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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윈도우 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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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서 해남으로 가기로 했다. 30분 정도 가다가 영암에서 잠깐 쉬고 빡시게 가려는데 기름이 거의 다 떨어졌다. 가면서 넣으면 되겠지 뭐 했는데 자꾸 반대쪽에만 주유소가 나온다. 아, 긴장된다. 다행히 성전면에 주유소가 있어서 기름을 넣고 다시 출발했다.

  성전을 지나니 곧 해남이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 드디어 말로만 듣던 해남인가! 주변 풍경도 왠지 달라보이는 것 같다. 차도 한 대도 보이지 않고 길은 쾌적하다. 나만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괜히 두근두근 거린다.

  18:00. 해남군 도착. 8138km.

  일단 해남군에는 도착했는데, 지도를 보니 땅끝마을까지는 또 꽤 가야된다. 해남에만 오면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목이 너무 말라서 근처 슈퍼에 들려 음료수를 하나 샀다.


  마시면서 동네를 서성이다 보니 복권집이 보였다. 땅끝 로또 안사줄 수 없지. 해남 자동으로 5천원치 주세요. 서울서 작은 스쿠터를 타고 온게 신기하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자기 아들도 뭐라고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안나네.. 아무튼 친절하게 근처 숙소랑 뭐랑 가르쳐주셨다. 로또 1등 당첨돼서 친절에 보답하리라(했는데 개꽝이었음).
  
  음료수 한 캔 마셨더니 조금 기력이 회복되는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땅끝으로 가야되니 빨리 가보자. 어차피 구름이 완전 다 뒤덮어서 땅끝가봐야 흐리멍텅한 바다밖에 안보일 것 같지만..

  18:25. 땅끝 마을로 출발.

  한참 가다보니 정신이 나갔는지 어느샌가 또 이상한 길로 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가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스르륵 걷히면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비가 좍좍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커먼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해가 보이려고 하고 있다. SPECTACLE!!


  이쯤되면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땅끝마을을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해 질 무렵의 땅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괴상한 길로만 안왔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제발 해야, 조금만 더 천천히 떨어져다오..

  기분이 완전 업됐다. 이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장마기간인데다가, 여기저기 미친듯이 비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 무슨 일인가. 머리 끝까지 신이 나서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가다보니 해변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아오, 안그래도 급한데 웬 해변이람.. 순간 그냥 갈 까, 아니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갈까 고민했다. 땅끝까지 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 밝은 바다를 못 찍을 것 같은 마음에 급히 셔터를 누르고 가기로 했다.


  혼자 신나서 큭큭 뛰어다니며 급 사진을 찍은 다음에 다시 땅끝으로 출발. 여행이 이렇게 신나는 거였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아, 급해 죽겠는데 가는 곳 마다 풍경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꾸만 사진기를 꺼내놓으라며 난리다. 카메라를 트렁크에 넣고 다녀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차 세우고 내려서 시동 끄고 트렁크 열고 카메라 꺼내서 찍고 넣고 닫고 아무튼 완전 귀찮다. 그래서 웬만하면 눈으로만 만족하고 지나가는데, 지금은 매우 하이라서 어쩔 수 없다. 찍고 가야지.


  19:30. 땅끝마을 도착. 8188km.

  드디어 1시간이나 걸려서 땅끝마을에 도착했다(30km정도면 오는 거린데 무슨 50km나..). 말로만 듣던 땅끝마을에 직접 와보다니.. 사실 첫 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니 이런저런 가게들이 난잡하게 많이 모여있어서 분위기가 영 아니었던 탓이다. 그냥 사람이 사는 집 같은 곳에도 간판만 달고 먹을 것을 팔고 있으니 말 다했다.

  아무튼 땅끝에 도착하긴했는데 어디가 진짜 땅끝인지 모르겠다. 진정한 땅끝이 어딘가 있을 것만 같다. 설마 여기가 그냥 다 땅끝입니다, 는 아니겠지.


  포토존이 있었는데, 뭐를 어떻게 찍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찍는건가? 아닌것 같은데.. 아무튼 포토존이라길래 포토질 해줬다.


  배도 여러대 있었다. 땅끝5호를 타고 리얼 땅끝까지 가봤으면 싶었다.

  뒷쪽으로 진정한 땅끝으로 가는것이라 추정되는 길이 있길래 올라가봤다. 앗, 모노레일이다! 하지만 장사를 안하네요. 평일 늦은시간이라 그런가.. 가방은 무거워서 어깨가 빠지려고 해서 모노레일을 타고 가려했는데 실패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보기로 했다. 가다보니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써있는 곳이 있어서 출입을 해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하고 다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붙어있는 안내판.

  '전망대까지 도보로 40분'

  GG! 이미 날은 거의 어두워져서, 땅끝 낙조 따위는 볼 수도 없다. 거기다 이노무 가방은 어찌나 무거운지 도저히 들고 40분, 왕복 1시간 20분을 버텨 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거기 간다고 해도 리얼 땅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후퇴.


  분명히 땅끝이 이쪽이라고 화살표가 돼 있는데.. 트럭이 땅끝인가? 어디야 도대체, 애매하게시리. 아무래도 거의 땅끝까지만 가본 것 같아 뒤돌아 가는 길이 찝찝했다.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기념품으로 땅끝 탑(등대? 뭐지? 아무튼)을 차에 싣고 가기로 했다.

  어느새 거의 깜깜해져서 바닥이 잘 안보일 정도가 되었다. 조금만 가면 바다로 퐁당해서 사망하게 되는 곳에서 사진찍으며 장난질 치고 있을래니 무서웠다.

  오늘의 목표인 땅끝도 찍었겠다, 이제 숙소로 갈 차례다. 완도에 찜질방이 좀 있다기에 거기로 가기로 했다. 어젯밤과는 비교도 안되는 밤길이 시작될테니 긴장 잔뜩해야겠다.

  20:15. '끝에서 다시 시작이다!' 같은 감상에는 1g도 젖지 않고 바로 완도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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