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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윈도우 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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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에서 빠져나오니 삼천포가 나왔다.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삼천포.. 남해를 끼고 있는 삼천포항 주변의 모습이 멋지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한 번 빠져줘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그냥 가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잘하면 오늘 창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통영에서 자고 거제 둘러보고 천천히 가도 될 듯하다. 하지만 나미가 빨리 귀환하라고 자꾸 재촉하는 통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로 결정했다. 거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가봐야 되겠다.

  1차선인데 앞 차가 너무 속도를 내지 않아 답답하다.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앞질러야 되는데 옆 차선에서 차가 하도 오는 통에 쉽지 않다.

  한참을 그렇게 추월할 기회를 엿보며 가다보니 뭔가 알 수 없는 곳에 왔다. 여긴 어디? 주유소 옆에 잠깐 세워놓고 지도를 봐도 어딘지 모르겠다. 지도에서 주유소를 찾아봐도 이 주유소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 온거야..

  모르면 그냥 직진이지, 뭐. 한참 가다보니 시내같은게 나왔다. 사천이다. 왜 여기로 왔지?

  어렸을 때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와보기는 처음이다. 뭐, 특별한 건 없는 것 같다. 심심한 동네라는 인상이다.

  17:55. 아무튼 사천 도착. 8520km.

  길도 잃어버리고, 저속으로 계속 달리고 하다보니 피로하다. 날도 흐릿흐릿하니 아주 축 처진다. 그래도 여기서 고성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으니 미친듯이 고성을 지나 마산으로 최대한 빡시게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차가 거의 없어서 계속 끝까지 스로틀을 땡기고 갈 수 있었다.

  가다보니 뒷 브레이크의 느낌이 이상하다. 머플러에서도 괴상한 소리가 간혹 난다. 그래도 가기는 계속 잘 간다. 불안하긴 하지만 사천으로 오는 중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냥 막 달려버리기로 했다.

  18:55. 고성 어느 정류장에서 잠깐 휴식. 8566km.
  
  
  마산 친구에게 전화도 할 겸 해서 잠깐 섰다. 고성에 공룡 발자국이 있어서 그런지, 버스 정류소에 공룡이 그려져있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정료소인지 왕만한 거미가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었다. 아무생각 없이 의자에 앉으려 들어갔다가 엄청난 거미줄 공격에 당해서 식겁했다.


  친구랑 대강 약속을 잡고 다시 마산으로 향했다. 마산이 가까워 질수록 차가 많아졌다. 하늘도 빠른 속도로 어두워져서 순식간에 밤이 되었다. 이정표는 마산이라고 하는데 너무 생소하다. 마산, 창원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이런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낯설어서 그런지 조금 무서웠다.

  진동까지 오니까 조금 안심이 됐다. 예전에 황이랑 수능 끝나고 면허 딴답시고 여기 온 기억이 났다. 오래 전인데도 예전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다.

  어느새 완전 깜깜해져서 길이 잘 안보이게 됐다. 마산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아는 길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무섭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곳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남의 차만 타고 돌아다니던 곳을 직접 운전하고 다니니 기분이 묘하다.


  20:05. 드디어 마산역 도착. 8632km.

  힘들었다.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인증샷은 찍어야지. 흐흐..

  마산역 근처에서 친구를 만났다. 기차나 버스타고 온 줄로 알고 있다가, 스쿠터를 타고 온 것을 보고 놀랬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는 동안 밤마다 술이 땡겼는데 오늘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잘 곳 근처에 스쿠터를 세워두고 가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조금 헤맸다.

  어쨌거나 기분좋게 친구랑 술 마시고 다른 친구네 집에서 취침. 아는 곳에 와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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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을 벗어나는 도중에 몇 번이나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무슨 도로에 그렇게 함정이 많은지.. 거기다 바람도 거칠게 불어서, 함정 피하랴 바람때문에 휘청이는 거 신경쓰랴 아주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하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한 번은 사거리 가운데서 함정을 만나 몸이 튕겨져 날라갈 뻔 했다. 사거리 직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신호에 걸려 대기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초록불이라서 계속 달렸다면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만약에 일정이 바뀌어서 밤에 이 곳을 지났었더라면 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해에 거의 도착하여 본격 남해대교를 지나가게 되었다. 짧은 오르막을 올라가며 우회전을 하니 남해대교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멋지다! 이때까지 지나온 대교 중에 가장 멋진 다리다. 차가 많이 다녀서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한게 아쉽다.

  다리는 멋진데 물이 더러워서 아쉬웠다.

거북거북

  가다보니 거북선 모양을 한 건물이 보였다. 이순신 장군이랑 뭔가 관련이 있는 곳인가 보다.
 
  15:05. 남해 도착. 8452km.

  시내는 아담했다. 학교 마치고 놀러나온 교복 여중생 무리들이 많이 보여 좋았다. 얼마만에 보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인가!


  배는 고픈데 딱히 땡기는 밥집이 안보였다. 김밥지옥류는 피하고 싶었다. 시내 돌아다니면서 봐뒀던 롯데리아에서 오랜만에 햄버거나 한 입 하기로 했다.

  창 밖으로 Sputnik-12(스쿠터 이름임..)가 보인다. 너무 오래동안 별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내달려서 뻗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잘 와줘서 새삼 대견하다.

  식사도 하고 세수도 하고 친구와 전화도 하면서 휴식 시간을 즐겼다. 다시 출발하려니 밥을 먹었는데도 몸에 힘이 별로 안들어가고 축축 처진다. 벌써부터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도 정신차리고 가야지.

  지도를 보니 근처에 해수욕장이 있길래 들렸다 가기로 했다. 비키니! 흐흐..


  16:25. 상주해수욕장 도착. 8475km.

  이게 뭐야! 썰렁하다! 기대했던 풍경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비키니는 커녕 예쁜 아가씨 한 명 찾기조차 힘들다. 날씨가 후져서 사람들이 많이 안나온 것 같다.

  이왕 해수욕장 왔으니 바다에 발이라도 담글고 갈까 했지만, 가방이 너무 불편하여 포기했다.

  딱히 볼거리도 없고 해서 바로 다시 나왔다.

송림이 상주비치의 포인트라고 함


  '상주은모래비치'라고 해서 은색 세계를 기대하며 왔더니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송림은 꽤 괜찮았다.

  주차해놓은 곳에 돌아와보니 할리, 대형 BMW 오토바이 오너들이 대거 모여있었다. 단체로 우빵잡으면서 여행하시는 듯. 간지가 아주 좔좔좔좔 넘칩니다. 애고 어른이고 암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그 그룹에 시선집중. 단체로 시동을 거니 엔진 소리에 땅이 다 떨리는 듯. 덜덜덜덜덜.. 다들 나이도 꽤 있으시던데 그래서 더 멋있었다.

  덕분에 바로 옆에 있던 내 스쿠터로는 쪽팔려서 접근도 못 할 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떠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하필 제일 젊어 보이는 자의 BMW 오토바이가 시동이 안걸린다. 빨리 떠나고 사람들의 시선이 없어져야 나도 갈거 아니냐.. 미치겠다.

  외곽 벤치에라도 앉을랬더니 양아치 아가씨들이 떼거지로 모여있다. 얼굴은 중학생 쯤 되어보이는 앳된 애들이, 하고 다니는 꼬라지는 나가요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남자 낚으려고 한창이신 듯(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음). 아무튼 얘네 무서워서 벤치로도 못가겠고.. 진퇴양난이다.

  담배라도 피우며 이리저리 배회하고 왔더니 드디어 시동이 걸려서 다들 출발하셨다. 조금 더 기다렸다 사람들의 관심히 흩어진 틈을 타서 나도 급히 지도를 보고 도망치듯 출발. 멀리까지 와서 괜히 오바해서 부끄러움질이다.

  16:55. 고성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다보니 해수욕장이 한 눈에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좀 볼만하다.


  높은 곳에서 보는 바다는 참 매력적이다. 작은 마을이라도 있어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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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맵


  13:50. 광양 도착. 8399km.

  순천에서 길을 헤매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잠깐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지도를 보았다. 날씨는 미친듯이 덥고, 습하다. 구름은 많은데 왜 이리도 쨍한지.. 한동안 화장실을 못간 탓에 쉬가 마려워서 몸을 이리저리 꼬면서 다음 경로를 물색했다.


  이때까지 광양제철이랑 포항제철이랑 따로따론지 알았는데, 광양제철도 포항제철 소속인가 보다.

  다음은 남해로 가보기로 했다. 남해바다를 남해라고 줄여서 부르는 것 말고 남해군이 따로 있었다. 가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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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 국도를 타고 순천으로 가다보니 순천만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순천만 갈대? 신성리 갈대밭 못 갔던 것을 여기서 만회해볼까? 잠깐 들려서 쉬다 가기로 했다.


  12:15.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도착. 8378km.

  순천만이라고 해서 바다가 보일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텅 빈 넓은 주차장만 보인다. 아마 차를 놔두고 안으로 걸어가야 되는 것 같다. 입구에 있는 아저씨께 여쭤보니 오토바이는 못 들어간다고. 구석에 오토바이를 대 놓고 근처 그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대형버스기사분들이 쉬는 곳인 것 같다.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심심하셨는지 주차관리하는 아저씨가 다가오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순천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대표적인 철새로 흑두루미가 있다. 버스에 그려진 흑두루미는 제대로 표현이 잘 안됐다. 철새들의 편대비행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도 해주셨다. 시베리아인가 뭔가 지명도 마구 나왔는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이런 훌륭한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서 순천시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단다. 일 년 농사의 결과물을 미리 다 사놓고 철새들에게 나눠 주는데, 농약 같은 것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300평에 90만원이었나? 가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시세보다 좀 더 쳐준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많은 얘기를 들었다.

  "여기는 건물이랑 주차장 밖에 안보이는데, 갈대밭이나 그런건 저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되나요?"

  "그렇지. 저 길로 해서 가면 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을거야."

  헉. 너무 오래 걸린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가야겠다고 했다.

  "그럼 오토바이 타고 들어가! 원래는 안되는데 내가 특별히 허락해준다!"

  처음에 입구 아저씨께서는 환경 보호 및 기타 그런 이유로 안된다고 하셨었다. 보니까 길도 좁고, 확실히 사람들에게도 폐가 될 것 같긴 했다. 고민이 됐다. 가고는 싶은데 미안하기도 하고.. 결국 고맙지만 사양했다.

  다음에 다시 꼭 오라고, 도착하면 편지 쓰라고 하시는 아저씨에게 인사드리고 아쉽지만 다시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로 했다.
  

결국 순천만까지 가놓고 이런 풍경만 보다 왔다.


  12:55. 광양으로 출발.

  순천을 벗어나는 내내 순천만이 마음에 걸렸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냅다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병신같은 사양은 미덕은 아니라고, 가슴 깊이 느꼈다. 앞으로는 웬만하면 감사히 받아야겠다.

  시내에서 길이 복잡하여 굉장히 헤맸다. 다행히 물어보는 사람마다 친절히 알려주시고, 멀리서 왔다며 조심하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셨다. 덕분에 다시 정상적인 길을 찾아서 잘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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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다가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 큰일날 뻔 했다. 주유소는 죄다 반대쪽에만 나오는지.. 중간에 길을 잠시 빠져나가 겨우 기름을 넣었다. 미리 주유소를 확인하고 가야 안전할 것 같다.

  9:50. 8324km. 보성다원 도착.

  보성에 왔으니 그 유명한 녹차밭이라도 보고 가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중간에 무슨 다원, 무슨 다원이라고 되어 있어서 잠깐 헷갈려하다가 대한다원으로 갔는데, 여기가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안심했다.

  사진으로 많이 접한, 위에서 녹차밭을 내려다 보는 풍경을 보려면 걸어서 쭉 올라가야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주차관리하는 아저씨에게 여쭈어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얼마나 걸리냐고 했더니 30분 정도면 된다고 하신다.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는데 괜찮을라나.. 고민하다가 한 번 가보기로 결정. 짐은 들고 가기가 불편하여 아저씨께 짐 좀 잘 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오토바이 위에 그냥 올려두었다. 다음에는 꼭 배낭을 메고 와야지.

  입구부터 온통 초록빛에다가 아무튼 공기와 향기가 다른 곳과 달랐다. 좋은 곳이구나. 입장권을 구입하고 본격 입장.

  그런데 밑에서 녹차밭을 올려다 보니.. 이거 전혀 30분으로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만만한 높이가 아닌데 이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여행 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처음이다. 어디를 가든 한산하고 조용했었는데, 오랜만에 사람냄새를 맡으니 반갑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그랬다.
 
  날씨도 무지 덥고, 습습하고 해서 땀이 막 났다. 생각보다 더 경사가 져서 올라가느라 힘들었지만 이왕 온 김에 꼭대기까지는 올라가자 싶어서 열심히 올라갔다.


  뭐가 녹차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록색의 뭔가가 무지 많은걸로 봐서 이게 뭔가 녹차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식이 너무 부족하구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만지고 이러는 녹차도 상품화가 되는지 궁금하다.


  올라가다 보니 탱크가 보였다. 약품 같은 것을 넣어놓고 다원 전체에 자동으로 공금해주는 시스템인가? 대놓고 노출시켜놓은 걸 보면 나쁜 약품은 아니겠지. 궁금해서 찍어봤음. (아시는 분은 댓글로 가르쳐 주시면 감사)

  내 뒤에 여자 두 명이 조잘조잘대며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야, 이 사람 바지 봐바라."

  "왜?"

  "태양열 충전하는거 같다."

  "야, 다 들리겠다.. ㅋㅋㅋ"

  "ㅋㅋㅋ"

  그래, 다 들었다.. 니네들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체크 바지 처음 봄?


  아.. 열심히도 올라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다 사진 찍는다 분주해서 앉아 쉬기도 힘들다. 그래도 구석에 가만히 서 있으니 바람도 살살 불어오고 시원했다.

  인기 출사지라 그런지 좋은 카메라 들고 온 사람들도 보이고, 아예 모델 대동해서 오신 대규모의 그룹도 보였다. 유명 사진 갤러리 등에서 보성녹차밭 사진을 볼 때면 감탄을 하곤 했었는데, 막상 내가 찍어보려니 어디서 뭘 찍어야 그런 사진이 나오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열심히 찍긴 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안나와서 안타깝다.

  올라와서 바람쐬며 멍때리고 있자니 밑에서 아까 그 두 여자가 올라온다. 막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제일 만만하니 사진 찍어주기를 부탁하고 싶은데 아까 그 일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일 터. 계속 쳐다보니까 결국 말을 건다. 찍어달라고. 필카였으면 얼굴을 잘라버렸겠지만, 디카라서 참았다. 그래도 무릎까지 꿇어가며 봉사하듯이 사진을 잘 찍어줬음.

  "사진 찍어드릴까요?"

  웬 추리한 몰골의 사람이 혼자서 땀 흘리며 이런데 놀러와 서 있는게 안쓰러웠나 보다. 사진 한 장 부탁하기 쑥쓰러워 혼자서 끙끙대던차에 잘됐다. 바로 콜.

  독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내려가자..



이것이 녹차잎인가?




웬 녹차 무덤




  내려오다 보니 상점이 있었다. 기념품도 팔고 있고, 음료수도 팔고 있었다. 녹차 과자 같은거 하나 사들고 가고 싶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 짐이 될 것 같아서 관뒀다. 대신 녹차 음료나 하나 마셔보기로.


  녹차 라떼! 너무 맛있다! 날씨도 덥고, 갈증도 심했던 상태라서 그렇게 느낀 것일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맛있다. 다음에 오면 또 마실거임.


  짐을 지켜주신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와보니 옆에 오토바이가 한 대 더 생겨있었다. 뭔가 좋아보인다. 이런걸로 다니면 스쿠터랑은 또 다른 재미가 있겠지.


  가까이 가서 보니 지도 보기를 매우 편하게 해놓으셨다. 부럽다! 그에 비해 나는..


  지도 한 번 볼라치면 시동 끄고 내려서 가방 들고 트렁크 열어서 지도 뺀 다음 가방을 트렁크 위에 올리고 지도를 가방 위에 올려두고 봐야 함. 바람이라도 불면 환장함.

  시계를 보니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30분이라고 하신게 편도 30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올라가보길 잘했다. 괜찮네.

  고흥으로 갈까하다 그냥 순천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11:15. 순천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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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0. 기상.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자다 깨다 하다 결국 잠을 포기했다. 일찍 출발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 괜찮다.

  씻고나와 짐을 정리했다. 이것저것 정리하며 찜질방에 계신 아저씨와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기보다 일방적으로 청취했음).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퀵 하루 300km 설' - 예전에 퀵 배달 하셨다고 하시면서, 하루에 300km 이상 달렸다고 하셨다. 이틀 평균 하루종일 빡시게 달린게 300km 정도인데, 이걸 매일 하셨다니.. 시내에서 달리면 더 피곤할텐데! 대단하십니다, 퀵 아저씨들.

  '매일 오일 교환설' - 퀵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오토바이가 생명이고 밥줄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해야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매일매일 엔진오일을 갈아줘야 된다고 하셨다. 출발하기 전에 오일 갈고 지금 600km정도 왔다고 하니 빨리 갈아야 된다고 하셨음. 그래도 한 1,000km 쯤 되면 갈겠습니다.

  '하버드 비(非)행복설' - 하버드 대학 나오고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했다고 과연 행복한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불행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셨음. 그 이후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음. 어쨌든 간에 돈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빚은 갚아야 될거 아냐..

찜질방 앞에서. 오늘도 구름이 많다.


  7;05. 출발.

  완도를 벗어나야하니 우선 강진으로 가보기로 한다.

완도 해변을 따라가다 본 어느 작은 섬(?)




완도를 벗어나는 중




강진버스여객터미널 근처


  8:10. 강진 버스여객터미널 도착. 8282km.

  지도 안보고 그냥 왔다. 우리나라 교통표지판은 참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막상 오고나서 보니 배타고 넘어갈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배에 오토바이 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아예 배를 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됐으니 사실은 조금 겁이 났던 것도 있다. 배 시간도 모르니 어쩌면 한참 기다려야 됐을지도 모른다. 잘됐다, 뭐.

  배가 고파서 근처에 식당을 살펴보니 만만한 곳이 없다. 터미널 안 분식집에서 간단히 하나 먹고 가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랬는지 가게에 재료가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라면이나 하나 시켜 먹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조금 피로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쉬다 가기로 했다. 쉬는 김에 이것저것 청소도 하기로 했다. 헬멧 실드도 더럽고 시트도 더럽고 카울도 진작에 더러워졌는데 계속 다음으로 미루어 왔던 차였다.

  터미널에서 쉬고 있자니 여러가지 사정이 많았다. 엄마와 터미널에서 싸우고 버스를 타지않으려는 딸, 아들이 서울 병원에 입원해서 급히 버스를 타고 가는 부모, 애인을 만나러 가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며 한가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각종 사정들을 엿들으려고 했던 건 절대 아님).

  근처에 영랑생가가 있는 것 같았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교과서에서 본 적 있다. 오늘도 어제들과 같이 비가 온다고 하니 서둘러야 하겠다. 느긋하게 가야될 것 같은데 자꾸만 서두르게 된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영랑생가는 패스다. 이런 나름 의미있는 곳이나 유명 관광지, 명소들을 들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것도 좋지만 단순히 별 목표도 없이 그냥 달리는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 떠났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수첩에 써놨는데 손발이 오글오글)

  9:10. 보성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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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행거리 : 314km
  • 코스 : 군산 - 김제 - 소성면 - 고창군 - 장성 - 나주 - 영암 - 성전 - 해남 - 완도
  • 날씨 : 아침 안개, 비, 강풍. 그 후 계속 흐리다가 해지기 직전 잠깐 맑음
  • 숙박 : 찜질방
  • 비용 : 42,700원
    • 기름 - 14,000원
    • 숙박 - 8,000원
    • 식비 - 10,000원
    • 로또 - 5,000원(꽝)
    • 기타(간식, PC방 등) - 5,700원
  • 기상시간 : 7:00
  • 출발시간 : 8:00
  • 도착시간 : 21:30
  • 취침시간 :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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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서 완도로 가는 무시무시한 밤길


  으아, 완전 무시무시하다. 이렇게 깜깜할 줄이야! 불빛하나 없다. 서울에는 밤이라도 불이 많아 밤 주행 신경도 안썼는데, 이런 곳도 있었다. 연약한 헤드라이트 하나만 믿고 가는 수 밖에.. 장애물이나 함정 같은게 거의 안보이기 때문에 초저속, 초긴장 상태로 주행했다. 뒤에서 차나 오토바이가 와서 쳐박을까봐 비상등도 켜주셨다. 귀신이나 괴물이 나올 것을 대비해 준비해간 MP3P도 가동했다. 계속 고속주행이라 바람소리 때문에 MP3P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는데, 이럴 때는 유용하구나.

  몇 곡 듣다보니 fishmans의 walkin'이 나왔다.


  "ぼくらは步く~ いいとこだけ~ 何にも考えない~ いいとこだけだよ~♬"

  흐느적흐느적 달리며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으니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이 짜릿한 기분이다. 아! 정말 적절한 노래다. 이번 전국일주의 모토와 맞아 떨어지는구나. 이 곡을 전국일주의 주제가로 삼기로 했다.

[가사 보기]


  21:30. 밤길과 노래에 흠뻑 빠져서 스르륵가다보니 어느새 완도에 도착했다. 8230km. 완도에 들어서자마자 PC방과 김밥천국이 보였다. 너무 행복하다. 이때까지 길찾느라 시내서 시간 다 보낸 것 생각하면..

  김밥나라서 급히 밥을 쳐묵쳐묵했다. 참볶을 시켰는데 이모가 밥을 무진장 많이 주셨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터지기 직전까지 많이도 밀어넣었는데도 처음과 별반 다름 없는 모습의 참볶.. 완전 패배했다.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먹었는데 양이 전혀 줄지 않네요 이거 무슨 마법의 참볶인가여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PC방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찜질방 위치와 내일 진행방향으로의 지도를 살펴보는데.. 문제가 생겼다.



  전에 대충 지도를 보면서,

  '해남-완도로 간 다음에, 완도에서 신지도, 고금도를 거쳐 장흥쪽으로 빠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네이버 지도였다. 잘보면 신지도와 고금도는 실같은 길로 이어져 있는 것 처럼 표시되어 있는데, 다음 지도에서 보니 길이 없는 것이었다. 악, 뭐야?! 위성사진으로 보니 실제로는 길이 없다. 낭패다.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왔던길을 돌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단 말인가? 한 번 갔던 곳은 안가기로 했건만.. 알고 왔었다고 해도 별 수 없었겠지. 오다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몇 번 탄 것 같은데, 내일 또 지나야 할 것 같으니 걱정이다.

  좋다는 찜질방을 찾아서 왔더니, 이 뭐 별로다. 그냥 동네 목욕탕을 개조한 듯 하다. 그래도 사람 없고 조용해서 좋긴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제 손이 무지 아프다. 원래 장갑을 하나 사오려고 했는데, 예쁜 장갑을 못찾아서 그냥 맨손으로 왔더니 이 모양이다. 목장갑이라도 하나 사서 낄까하는 충동이 강하게 든다. 다음에 장거리 여행을 가게 되면 후진 장갑이라도 꼭 챙겨가야 되겠다.

  피곤하여 12시 쯤 급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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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서 해남으로 가기로 했다. 30분 정도 가다가 영암에서 잠깐 쉬고 빡시게 가려는데 기름이 거의 다 떨어졌다. 가면서 넣으면 되겠지 뭐 했는데 자꾸 반대쪽에만 주유소가 나온다. 아, 긴장된다. 다행히 성전면에 주유소가 있어서 기름을 넣고 다시 출발했다.

  성전을 지나니 곧 해남이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 드디어 말로만 듣던 해남인가! 주변 풍경도 왠지 달라보이는 것 같다. 차도 한 대도 보이지 않고 길은 쾌적하다. 나만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괜히 두근두근 거린다.

  18:00. 해남군 도착. 8138km.

  일단 해남군에는 도착했는데, 지도를 보니 땅끝마을까지는 또 꽤 가야된다. 해남에만 오면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목이 너무 말라서 근처 슈퍼에 들려 음료수를 하나 샀다.


  마시면서 동네를 서성이다 보니 복권집이 보였다. 땅끝 로또 안사줄 수 없지. 해남 자동으로 5천원치 주세요. 서울서 작은 스쿠터를 타고 온게 신기하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자기 아들도 뭐라고 뭐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안나네.. 아무튼 친절하게 근처 숙소랑 뭐랑 가르쳐주셨다. 로또 1등 당첨돼서 친절에 보답하리라(했는데 개꽝이었음).
  
  음료수 한 캔 마셨더니 조금 기력이 회복되는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땅끝으로 가야되니 빨리 가보자. 어차피 구름이 완전 다 뒤덮어서 땅끝가봐야 흐리멍텅한 바다밖에 안보일 것 같지만..

  18:25. 땅끝 마을로 출발.

  한참 가다보니 정신이 나갔는지 어느샌가 또 이상한 길로 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가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스르륵 걷히면서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비가 좍좍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커먼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해가 보이려고 하고 있다. SPECTACLE!!


  이쯤되면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땅끝마을을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해 질 무렵의 땅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괴상한 길로만 안왔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제발 해야, 조금만 더 천천히 떨어져다오..

  기분이 완전 업됐다. 이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장마기간인데다가, 여기저기 미친듯이 비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 무슨 일인가. 머리 끝까지 신이 나서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가다보니 해변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아오, 안그래도 급한데 웬 해변이람.. 순간 그냥 갈 까, 아니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갈까 고민했다. 땅끝까지 갔다가 어두컴컴해지면 밝은 바다를 못 찍을 것 같은 마음에 급히 셔터를 누르고 가기로 했다.


  혼자 신나서 큭큭 뛰어다니며 급 사진을 찍은 다음에 다시 땅끝으로 출발. 여행이 이렇게 신나는 거였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아, 급해 죽겠는데 가는 곳 마다 풍경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꾸만 사진기를 꺼내놓으라며 난리다. 카메라를 트렁크에 넣고 다녀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차 세우고 내려서 시동 끄고 트렁크 열고 카메라 꺼내서 찍고 넣고 닫고 아무튼 완전 귀찮다. 그래서 웬만하면 눈으로만 만족하고 지나가는데, 지금은 매우 하이라서 어쩔 수 없다. 찍고 가야지.


  19:30. 땅끝마을 도착. 8188km.

  드디어 1시간이나 걸려서 땅끝마을에 도착했다(30km정도면 오는 거린데 무슨 50km나..). 말로만 듣던 땅끝마을에 직접 와보다니.. 사실 첫 인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니 이런저런 가게들이 난잡하게 많이 모여있어서 분위기가 영 아니었던 탓이다. 그냥 사람이 사는 집 같은 곳에도 간판만 달고 먹을 것을 팔고 있으니 말 다했다.

  아무튼 땅끝에 도착하긴했는데 어디가 진짜 땅끝인지 모르겠다. 진정한 땅끝이 어딘가 있을 것만 같다. 설마 여기가 그냥 다 땅끝입니다, 는 아니겠지.


  포토존이 있었는데, 뭐를 어떻게 찍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찍는건가? 아닌것 같은데.. 아무튼 포토존이라길래 포토질 해줬다.


  배도 여러대 있었다. 땅끝5호를 타고 리얼 땅끝까지 가봤으면 싶었다.

  뒷쪽으로 진정한 땅끝으로 가는것이라 추정되는 길이 있길래 올라가봤다. 앗, 모노레일이다! 하지만 장사를 안하네요. 평일 늦은시간이라 그런가.. 가방은 무거워서 어깨가 빠지려고 해서 모노레일을 타고 가려했는데 실패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보기로 했다. 가다보니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써있는 곳이 있어서 출입을 해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하고 다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붙어있는 안내판.

  '전망대까지 도보로 40분'

  GG! 이미 날은 거의 어두워져서, 땅끝 낙조 따위는 볼 수도 없다. 거기다 이노무 가방은 어찌나 무거운지 도저히 들고 40분, 왕복 1시간 20분을 버텨 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거기 간다고 해도 리얼 땅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후퇴.


  분명히 땅끝이 이쪽이라고 화살표가 돼 있는데.. 트럭이 땅끝인가? 어디야 도대체, 애매하게시리. 아무래도 거의 땅끝까지만 가본 것 같아 뒤돌아 가는 길이 찝찝했다.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기념품으로 땅끝 탑(등대? 뭐지? 아무튼)을 차에 싣고 가기로 했다.

  어느새 거의 깜깜해져서 바닥이 잘 안보일 정도가 되었다. 조금만 가면 바다로 퐁당해서 사망하게 되는 곳에서 사진찍으며 장난질 치고 있을래니 무서웠다.

  오늘의 목표인 땅끝도 찍었겠다, 이제 숙소로 갈 차례다. 완도에 찜질방이 좀 있다기에 거기로 가기로 했다. 어젯밤과는 비교도 안되는 밤길이 시작될테니 긴장 잔뜩해야겠다.

  20:15. '끝에서 다시 시작이다!' 같은 감상에는 1g도 젖지 않고 바로 완도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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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로 가려면 13번 국도를 타야하는데 이게 광주에 걸쳐있다. 왠만하면 안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외곽인 편이라 괜찮지 싶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그랬는데 역시 광주는 광주다. 신호도 무지 많고, 차도 무지 많다. 한동안 사람도 차도 없는 한적한 곳만 쌩쌩 달리다가 갑자기 복잡해지니 답답하다. 역시 대도시 근처는 안가는게 상책인 것 같다.

  광주를 벗어나니 다행히 다시 한산해졌다. 그래서 다시 쌩쌩 달렸다. (다녀와서 노트에 보니 무슨 터널에서 120km로 미친듯이 달렸다고 적혀있는데, 다녀와서 지도를 찾아보니 터널이 없다. ??) 광주에서 받은 짜증이 다 날라갔다.


  16:15. 나주 도착. 8071km.

  대책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밥을 제때 안먹어서 배가 너무 고프다. 일단 나주에서 위장에 뭔가 넣고 가기로 했다. 타지에 가게되면 식당이 많은 곳이나 번화가를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곳이나 헤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느낌상 대개 시청이나 터미널, 역 근처에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아니더라고 밥집은 꽤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시청으로 가보기로 결정.

  아, 젠장. 실패다. 아무것도 없다. 시청 옆에서는 어떤 단체가 시위를 하고 있고, 밥집떼는 안보였다. 그냥 돌아가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 여행기에서 시청 인증샷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났다.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가기로 했다. 마침 시청이 공사중이라 보기가 좀 안좋았던게 아쉽다. 노래부르고 구호외치고 하는 사람들에게 사진 부탁하기가 좀 그래서 내 사진은 못 찍었다.

  이제 시청은 물건너 갔으니 터미널과 기차역이 남았다. 나주역이 시청에서 가까운지라 거기로 가보기로 했다. 거기는 뭔가 있겠지.


  나주역 도착! 아, 배가 찢어질 것 같다. 식당은?


  으아아아앜! 허허벌판! 허무하다. 시청, 기차역, 터미널의 법칙은 어떻게 된 것인가..


  기차역 앞에 나주 관광안내도가 있길래 밥집을 찾아보고 가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나주배가 유명했구나. 관광안내도가 배 모양으로 돼있는것을 보고 눈치챘다. 안내도를 뒤져보니 곰탕거리가 있었다. 나주곰탕! 맞다. 나주하면 곰탕이 아니었던가! 곰탕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벌써부터 침이 질질 나온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안내도를 자세히 안보고 갔더니 길을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안내도가 무슨 만화처럼 그려져 있어서 못찾는 걸거라며 한참을 헤맸다. 결국 근처 할아버지에게 도움 요청.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사실 빨리 밥먹어야 되는데 몇 번이고 반복설명을 해주셔서 안달이 나긴 했다. 하지만 차마 말을 끊지는 못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드디어 밥집으로 출발.
  

  힘들게 찾아왔다. 아무래도 곰탕 거리다 보니 곰탕집이 많아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급해서 대충 보니 하얀집이 유명한거 같아서 여기로 가기로 했다. 무려 곰탕의 원조집인데다가 3대째라니!


  밥시간이 훨씬 지나서인지 손님이 없었다. 식당 아주머니들께서 식사를 하고 계셔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 바로 주문을 했다. 거울에는 원조집 지정업소들이 나와 있었는데, 곰탕은 여기 하얀집이 원조집으로 지정이 되었단다.


  주문을 하자마자 아주머니께서 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곰탕을 퍼다가 금방 갖다주셨다. 바로바로 나와서 정말 좋구나.


  곰탕이라고 해서 뽀얀 국물을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갈비탕 처럼 다소 맑은 국물이 나왔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순간 '아, 이게 뭔가요' 하며 급히 한 숟갈 떠먹어보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앟!!

  맛있다! 여태껏 먹어본 그 어떤 곰탕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맛이다. 거기다 6,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고기는 뭐이리 가득 들어 있는것이냐! 깍두기와 김치 또한 맛있음! 환장한다, 아주.

  미친듯이 뚝딱 다 처먹었다. 이때까지 받은 스트레스가 한 방에 다 날아가는 그런 맛이었다. 다음에 곰탕 먹으러 다시 나주를 들려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마구 든다.

  아, 이제 배도 부르니 여유롭게 다음 목적지를 물색할 때가 왔다. 목포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나주에서 너무 가까워 지금 가자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 그렇다고 해남 땅끝마을을 가자니 시간이 너무 빠듯할 것 같다. 고민을 좀 하다 결국 해남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빡시게 달리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곰탕의 힘으로 가면 충분히 가능 할 듯하다. 가보자!

  16:45. 땅끝마을을 향해 영암쪽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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